구독서비스여서 했던 고민들

이전 글에서는 구독서비스를 마케팅하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포인트들을 정리해보았다. 그리고 오늘 쓰는 글에서는, 구독서비스 마케팅이라서 유독 더 고민됐던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이 포스팅을 쓰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이 고민들 때문이었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 싶었던 나의 사례와 의문에 대해 다른 마케터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

LTV의 뒤에 숨어있는 것

구독서비스에서 단발성 구매가 아닌 Life Time Value, LTV로 마케팅 성과를 측정하는 것은 당연하고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기준이 LTV라면 마케팅 전략도 그에 맞춰 달라진다. 초반 구매 전환 허들이 다소 높더라도 오래도록 쓰는 유저를 중심으로 마케팅할 수도 있고, 리텐션이 높은 서비스의 경우 첫 구매 시 혜택을 많이 줘서 일단 데려오는 게 이득일 수도 있으니까.
3년 전 내가 마케팅했던 B2B 서비스는 다행히도 리텐션이 매우 높은 구독서비스였다. 월 비용이 꽤 되는 편이었는데 이탈율이 매우매우 낮아서, 사용자 LTV가 6~800만원 정도였다.

여기서 잠깐, LTV 구하는 공식은?

LTV를 구하는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인 공식이 있다. 그런데 이건 비율, 증감율 공식처럼 직관적이지 않아서 구독서비스에서 업무를 해 본 적 없는 분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 방법이라 한 번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나는 수학과 친하지 않았던 문과생이라 이 공식을 받아들이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었다.

LTV 공식

우리 월 구독서비스의 이탈율이 3% 다! 라고 한다면, 우리 서비스의 리텐션 기간은 1/3% = 33개월이 나온다. 우리 서비스가 월 10만원짜리라면 LTV는 100,000/3% = 333만원 또는 그냥 33*10만원 = 330만원 이라고 계산 된다.
무한급수를 사용한 공식인데, 처음 저 공식을 접했을 때 나는 왜 1에 이탈률을 나눠야 하는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ㅠㅠ 구독 서비스 LTV 공식 관련 포스팅을 여러 개 찾아본 후 이 방법이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계산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입사 후 6개월 정도 됐을 때였던 것 같다.

처음엔 수알못으로서 호기롭게 이렇게 물어봤었다.
Q1. 지금 구독자들의 평균 사용기간을 구하면 되는 것 아닌지?
A1. 그건 앞으로도 계속 사용 예정인 유저의 예상기간을 고려하지 않는 방법임. 즉 '모든 구독자들이 오늘 다 해지한다'는 전제 하에 나오는 평균 기간이라서 실제보다 보수적인 결과값이 나올 것임.

Q2. 그러면 이탈한 유저들의 평균 기간을 구하면 되는 것 아닌지?
A2. 그 경우 우리 서비스에 로열티가 있는 꾸준한 사용자의 데이터가 들어가지 않게 됨. 중간에 이탈한 유저들만의 LTV라서 이것 또한 보수적인 결과값이 나올 것임.

맞는 말이었다. 신규 유저는 매월 들어오고 이탈 유저는 매 월 다르기 때문에 정적인 데이터로 평균값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수학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많지 않았는데, 이 때 처음으로 수학이 참 실용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LTV는 이렇게 필요하고 유의미한 기준이었다. 사용성이 어느정도 있고, 가격이 좀 있고, 시장 진입에 성공한 (너무 꿈 같은 상황인가 싶지만) 서비스라면 LTV를 측정하는 것이 참 즐거운 일일 것이다. 나의 전 직장 B2B 서비스가 그랬다. 입사 초에 내가 저 공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예상 기간이 저렇게 길고 LTV가 저렇게 높다고?"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리 보고 조리 본 결과 그게 맞는 값이었지만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듣기에는 다소 행복회로 같이 들렸다. 일단 사용자를 유료 전환 시키면, 그 유저가 알아서 우리 서비스를 3년을 써 줄 것이다. 라는 사실.
그런데 이 말은 맞긴 한데 틀렸다. 그 점을 나는 퇴사를 한 뒤에야 이렇게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당시 나의 고민은 LTV 수치 측정의 정확도가 아니라 LTV 에 가려진 다른 기준들 때문이었다. LTV는 너무너무 매력적이지만 덩치가 너무 큰 개념이라서 마케팅 사이 사이 중요하고 세밀한 기준을들 가려버린다.

1) LTV 300만원이니까 마케팅 구매전환 290만원에 해도 됨!
실제로 전 회사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던 이슈였다. LTV > CAC 면 된다는 것. 이론 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냥 이윤 파이 크기를 키우냐 마냐 하는 의사결정의 문제일 수 있다. (물론 내가 해당 서비스를 담당하던 당시에는 절대 그렇게 진행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하라고 해도 내가 납득이 안 갔어서..) 이 기준은 정상적인 마케터들이 진행할 때에는 문제가 없는데, 성실하지 않거나 나쁜 마음을 먹는(…) 마케터들이 담당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 원래 10만원에 데려오던 고객을 120만원에 데려오는 등 효율이 폭발적으로 낮아졌어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아직 LTV > CAC 니까. 더 잘 할 수 있는 데도 잘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2) 고객 세그먼트를 나누지 않은 이탈율의 함정
우리 서비스의 이탈율이 10%라고 했을 때. 유저가 100명일 때는 그럭저럭 '10%구나' 하고 생각했다. 유저가 1,000명이 됐을 때. 5,000명이 넘었을 때. 정말 모든 유저들을 저 하나의 평균값으로 퉁 쳐도 되는 걸까? 하고 걱정이 됐다. 최근에 안 사실인데, Jason Cohen 이라는 사람도 이런 문제의식으로 단기와 장기를 구분한 LTV 계산법을 제안했다고 한다.
“가입 후 첫 3개월까지는 이탈률이 15%인데 그 이후부터는 3%일 수도 있잖아!”
“A타입 유저들은 3개월 안에 이탈하는데 B타입 유저들은 우리 서비스랑 잘 맞아서 1년 넘게 쓸 수도 있잖아!”
이런 식의 생각이다. 내가 있던 구독서비스에서 고객 유치를 하기 위해 초반 몇개월 동안 어마어마한 혜택을 제공한 적이 있다. 사용료 무료, 사용기기 무료 등등 1) 번의 논리에 근거해서 마구마구 혜택을 제공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의문이 있었다. 그 유저들이 오가닉하게 유입 되었거나 혜택을 덜 받은 유저들 대비 리텐션이 어땠을까? 혜택 받는 기간이 끝난 후 그 유저들이 정식 비용을 내게 되면 손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리텐션이 더 좋으려나?

이 의문은 끝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데이터 분석을 위해서는 각 프로모션의 진행 기간과 제공 혜택들이 정리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알고 싶다. 비율이라는 것은 너무 오해의 소지가 많다. 리텐션이 어느 정도 되는 구독서비스에서 총 이탈율의 분모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월에 이탈하는 유저 수가 지난 달 대비 두 배가 되어도 비율 수치는 변함이 없을 수 있다. 여전히 동일하게 3%라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이게 맞을 수도 있다. 여전히 3%는 맞으니까. 예상 비율 범위에 있으면 아직은 정말 안전한 것일 수도 있다. 정말로? 나는 여전히 이 문제에서 찜찜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3) 한 번의 전환으로 정말 33개월이 유지되는가
내가 한 번 데려온 유저는 지속적인 케어가 없어도 정말 구독을 유지하는가? 이것도 나에게 큰 물음표였다. 그 이유는, 이런 생각으로 회사에서는 한정된 리소스를 로열티 마케팅이 아닌 신규 유입 단에만 집중하는 데 쓰고 싶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반론도 제기할 수 없었다. 일단 수치 상으로는 그랬기 때문이다. 로열티 마케팅이나 CRM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시점에도 우리 서비스는 높은 리텐션을 선보였다. 어쩌면, 일상 속에 너무 깊게 파고 든 구독 서비스는 유저에게는 삶의 일부가 되어 별다른 혜택이 없어도 리텐션이 유지되는 저력을 보인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경쟁사가 등장한다면? 많이 등장한다면? 그 중 한 두개는 우리만 하거나 우리보다 좀 더 매력적이라면? 어떤 인더스트리이든, 서비스 초기에는 경쟁군이 없었더라도 3년 이내에 생길 법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에도 상황은 변함 없을까? 유저에게 '지속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제공하지 않아도 (혹은 제공하더라도) 변함없이 높은 리텐션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위험한 행복회로 아닐까?

결론

앗 참고로 LTV를 사용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구독서비스에서 LTV 를 보는 것은 당연하고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당시 서툴렀던 나와는 달리 이런 문제들을 바로 보고 잘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만약 내가 다시 구독서비스 마케터가 된다면 그 때는 (1) LTV와 이탈율을 덩치가 큰 개념으로 보고 가능한 쪼개볼 것이다. 유저 세그먼트별, 시즌별, 혜택별로 쪼개보고 답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정해진 천장까지 최고한도로 사용하는 것보다 최고효과를 내는 좌표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 데이터는 결국 결과로 도출되는 지표니까. 잘하고 못한 성과가 후반영되어 나타나고, 그래서 데이터로 위험도를 측정하면 골든 타임을 놓쳐 미리 예방할 수 있었던 큰 재앙을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해 볼 것이다.
방향 설정 담당자들이 이렇게 서툴렀는데도 잘 굴러간 나의 구독서비스가 생각난다. 지못미. 앞으로 더 잘 되길 바라. 아프지 말고!